상담자의 역할

2023-12-17

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상담자의 모습을 그려놓고, 그것을 기준 삼아서 상담에서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니 그 동안 상담이 어렵게만 느껴졌음을 실감한다.

상담에서의 주인공은 상담자가 아니라 내담자인데, 초점이 너무 자신에게 와 있었음을 깨닫고 올 한해 상담자로서 어깨에 힘을 빼려 했다.

스페셜리스트로서 무언가 내담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에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, 이런 생각은 망상일 수 있다.[1] 상담자가 생각하는 솔루션은 언제나 내담자에게 무의미하다. 늘 내담자가 속한 환경의 극히 일부만을 보기 때문이다. 상담실 안에서 상담자인 내가 보는 내담자는 상담실 밖의 내담자와는 큰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.

한 사람의 목격자로서 내담자가 어떤 경험을 해왔고, 하고 있고, 하려 하는지 잘 듣는 것이 상담자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의 팔할 정도인 것 같다.[2] 심리상담에서도 '기술'이 필요하지만, 내담자가 자기 얘기의 초점을 잘 맞출 수 있게 돕는 선에서만 그 기술이 유효하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.

상담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대부분 하는 것인데, 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모호함을 반기기 어렵고, 내담자가 새로운 자기서사의 편집자[3]가 되도록 격려[4]하지 못했을 수 있다.


  1.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없다: 생존하기 위한 내담자의 노력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음. ↩︎

  2. 한 사람의 목격자가 되어 주는 것이 심리치료자라는 직업의 중요한 부분 ↩︎

  3. 자기서사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고 대안 반응을 실험할 수 있다 ↩︎

  4. 내담자를 우회적으로 격려하는 법 ↩︎

  5. Deborah L. Cabaniss_2016_Psychodynamic Psychotherapy_A Clinical Manual_2nd edition_서지노트#The role of common factors ↩︎